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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를 심폐 소생하다: 가족과 함께 되살린 전남 함평의 기적

디-사커 2025. 5.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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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 폐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나요?
텅 빈 운동장, 녹슨 그네, 깨진 창문과 먼지가 쌓인 교실?
저도 그랬습니다. 폐교는 한때 수많은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이 오갔던 장소였지만, 지금은 방치된 채 잊혀진 기억의 파편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요. 전남 함평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 혼불남초등학교는 완전히 다른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여기는 단순한 리노베이션을 넘어서, 시간과 세대, 그리고 사랑이 새롭게 깃든 집으로 심폐소생됐습니다.

오늘은 이 특별한 집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 집, 들어보셨나요?


폐교에서 '집'이 되기까지: 믿을 수 없는 여정

1999년, 혼불남초등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되었습니다.
이곳을 2002년에 매입한 사람은 놀랍게도 1세대 포크 가수이자 패션 디자이너였던 은이 씨 부부였습니다.
아마 이름만 들어도 "아, 그 노래!" 하고 떠오를 분도 있을 거예요.
은이 씨는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라는 노래로 한 시대를 풍미했죠.

그들의 딸 부부는 이 폐교를 두 번째로 심폐소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됩니다.
두 세대가 이어가는 집, 그 시작은 꽤나 소박하고, 또 눈물겨웠습니다.


놀라운 공간 변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집

이 폐교는 기존 학교 건물 외에도 은이 씨가 직접 설계하고 신축한 건물이 연결돼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건물의 구조와 바닥입니다.
황토 바닥, 알고 계신가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각 바닥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으로,
자연 환기와 습도 조절에 탁월합니다.

또 하나, 폐교의 교실과 급식실은 거실주방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도시락을 난로에 데워 먹던 급식실은 따뜻한 거실로 변했고,
창문 너머로는 어릴 적 뛰놀던 운동장이 보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집 곳곳에 과거의 흔적을 일부러 남겼다는 것!
기름칠한 교실 바닥, 오래된 문짝, 낡은 천장은 시간을 거스른 듯한 감동을 줍니다.


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

보통 우리는 집을 지을 때 "완성"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이 가족은 달랐습니다.

터진 옷처럼 꿰매듯, 기운 바닥, 붙인 합판, 때로는 벽지가 덜 발린 방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부족함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이 집의 진짜 매력입니다.

"집은 끝없이 손봐야 하고, 그 과정 속에서 고생도 하지만 행복도 주는 존재"
라는 이 가족의 말이 깊게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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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 두 세대의 공존

어릴 때는 바쁜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
항상 일에 쫓기던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라 '사람들의 은이'였죠.

하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혼자가 아닌,
부모와, 배우자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큰 집.

이 선택은 단순한 효도 그 이상이었습니다.
함께 사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카페를 열고 천연염색 작업장을 만들고, 이 집 전체를 하나의 '공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이 집만의 독창적 공간들

  • 운동장과 이어진 거실: 창문을 열면 바로 운동장이 펼쳐집니다.
  • 황토 바닥: 계절 내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 탁월합니다.
  • 패션쇼 무대 같은 계단: 은이 씨의 패션 무대 감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구조입니다.
  • 숨은 냉방 공간: 여름철 천연염색 작업을 위한 시원한 휴식 공간까지 마련.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집은
시간이 멈춘 듯 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작은 물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사람 손의 온기

특히 감동적인 장면은,
폐기 직전이던 오디오 스피커를 고치고,
오랜만에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죽은 물건도 다시 살아난다."

이 집의 철학은 그렇게 한순간, 한순간 쌓여갔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

  1. 공간을 포기하지 않고 재생하는 용기: 폐교도, 버려진 것도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2. 완벽함이 아니라 살아가는 흔적을 사랑하기: 벽지가 덜 발라도, 바닥이 울퉁불퉁해도.
  3.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기: 부모님과 함께, 다음 세대와 함께.

마지막으로 묻고 싶어요.

여러분에게도 심폐소생하고 싶은 공간이 있나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방, 먼지 쌓인 창고, 혹은 마음 한구석 잊고 있던 시간들.


공간을 살리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을 다시 살리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폐교를 살린 이 가족의 이야기는 단순한 미담이 아닙니다.
시간과 사랑을 쌓아 만든 '살아 있는 집'에 대한 진지한 기록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사는 집도, 우리가 사는 시간도, 결국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 귀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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