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일본을 오가며 포로 667명을 구출한 외교관이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조선 초기, 외교로 외구를 제압하고 평화를 이끈 인물, 그는 바로 통신사 이예입니다. 고려 말~조선 초의 격동기, 그는 어떻게 40여 차례나 일본을 다녀왔을까요?

조선을 대표한 일본 전문 외교관, 이예
이예(1373~1445)는 울산 출신의 향리 출신으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조선 최고의 대일 외교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외교 여정은 단순한 사절단 활동을 넘어, 외구로부터 조선을 지키고 포로를 구출하며 국력을 상징한 상징적 사명이었습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엔 이예에 대한 기록이 75차례 등장하고, 졸기엔 2장에 걸쳐 기술될 정도로 중요한 인물로 다뤄졌습니다.
외교가 아닌 전장에서, 외교의 힘을 입증하다
1419년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에선 중군 병마 부수로 참여해 큰 공을 세웠고, 대마도와 일본의 정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로서 활약했습니다. 덕분에 병조판서 조말생은 "이예 공이 가장 크다"고 평가했으며, 그의 전략은 단순한 무력 시위를 넘어 실질적 평화로 이어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유구까지, 한반도 외교의 지평을 넓히다
이예는 일본 본토와 대마도를 넘어 당시 유구(오키나와)까지 사신으로 다녀온 유일한 인물입니다. 유구에서 포로 44명을 구출한 그는 조선의 외교 영역을 확장시켰고, 조선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유구에 공식 사절로 파견된 인물로 남습니다. 이는 조선의 외교적 위신을 드높이는 사건이었으며, 그가 단순 외교관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사명자'였음을 보여줍니다.
문인 제도와 계해약조 — 제도적 기반을 구축한 실용외교
세종 때 체결된 계해약조(1443)는 그의 마지막 사신행에서 완성된 외교적 결실로, 대마도주의 세견선 허용, 조미 지급, 문인 제도 등을 명문화하여 일본과의 안정적인 교역과 외인 통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는 외교 정책의 원칙으로 “대의명분으로 회유하고 실리로 통제한다”는 전략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후일 조선의 통신사 외교 정책의 핵심 철학이 되었으며, 명분과 신리를 모두 갖춘 외교 전략가로서의 이예를 증명합니다.
개인사에서 비롯된 국가적 사명감
이예는 어린 시절, 외구에게 어머니가 납치당하는 사건을 겪으며 외구에 대한 원한과 경계심이 깊어졌습니다. 24세에 울주군수를 따라 외구에 붙잡혀 대마도까지 갔다가 상전을 지키며 의로움을 보였고, 그 공으로 아전 신분에서 벗어나 관직을 받게 됩니다. 그의 인생은 국가와 백성을 위한 봉사의 연속이었으며, 말년까지도 포로 송환을 위해 사신행을 자청했습니다.

신뢰와 명분, 그리고 실리의 외교
이예의 생애는 단순한 외교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외교 전략을 택해야 하는지를 묻는 거울입니다. 그의 전략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조선'이라는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외인을 회유하고, 제도를 통해 통제하는 입체적 외교였습니다.
그가 개척한 통신사 외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입니다. 힘의 외교가 아닌, 이해와 공존의 외교가야말로 지속 가능한 평화로 가는 길임을 증명합니다.
이예를 오늘에 다시 소환하며
500년 전, 칠순의 나이에도 사신행을 자청한 그 외교관. 이예는 외구를 적이 아닌 교역 파트너로 변화시켰고, 대마도의 정치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양국 평화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명분과 신뢰로 외부 세계와 마주할 것인가?”
지금, 이예를 다시 읽고 외교의 본질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 여러분은 오늘날 한국 외교에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 댓글로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공감과 공유도 함께 해주신다면, 더 많은 이들이 이예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Jq3wFzpmSA?si=5Qx8zc5UutAk70FB
'주제별 다큐멘터리 큐레이션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0년 간병 끝에 빚더미…‘가족 간병’은 왜 파산으로 이어질까? (4) | 2025.07.29 |
|---|---|
| 백세에도 다림질하는 이유: 노인의 고집이 아닌 정서적 최적화였습니다 (0) | 2025.07.12 |
| 프랑스 vs 한국: 급부상하는 연금 개혁, 왜 사회는 들끓는가? (1) | 2025.07.12 |
| 88년 마지막 아이, 그 후 36명만 남은 마을 이야기 (1) | 2025.07.07 |
| 80년 바닷속 울부짖음: 해저탄광 속 조선인 징용자 유해 발굴의 진실 (0) | 202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