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다큐멘터리 큐레이션/사회

백세에도 다림질하는 이유: 노인의 고집이 아닌 정서적 최적화였습니다

디-사커 2025. 7. 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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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홀로 다림질을 하는 90대 할머니, 백세가 되어도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 그리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는 여든여덟 인분 할머니. ‘늙어도 사람이고 싶다’는 이들의 삶 속엔, 고독과 욕망이 교차합니다.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노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삶의 주도권과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려 하는지, 이 다큐멘터리는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출처_EBS다큐

익숙한 집과 익숙한 고독: 마을에서 혼자 사는 인분 할머니

곡성의 한 마을, 50여 가구가 조용히 살아가는 그곳에서 인분 할머니는 정적만이 흐르는 큰 집에서 혼자 살아갑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 없이 하루가 지나고, 고독은 점점 짙어집니다.

가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걸어가지만, 대화는 어긋나고 소통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귀가 어두워지고, 말이 어긋나며, 청력 저하는 단순한 신체 문제가 아닌, 관계 단절의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의 50%가 난청을 겪으며, 의사소통은 점점 더 어렵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세계 노인의 3분의 1 이상이 사회적 고립감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눈도 못 써서라. 좋은 건 하나 없어.” — 이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존재가 지워지는 듯한 감각입니다.


출처_EBS다큐

‘같이 산다고 함께 사는 건 아니다’ — 고부 갈등 속의 독립 전쟁

또 다른 노인은 며느리와 함께 사는 시어머니입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며느리와 둘이 살게 된 시어머니는 삶의 결정권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수저 하나 정리하는 사소한 행동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사소한 말투도 서운함이 됩니다.

이는 단순한 ‘시집살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이제 꽁하고 맑다 흐렸다”는 며느리의 말처럼, 이는 감정적 권력의 갈등이자,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 욕구의 충돌입니다.

이 다큐는 노인의 행동 이면에 있는 욕망 — 존재감, 자율성, 정서적 안정 — 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이건 내 직업이야” — 다림질에 집착하는 치매 노인의 이유

하루 종일 다림질을 반복하는 90세 할머니. 그녀는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다림질만큼은 누구보다 정확히 기억하고 완성해냅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평생 자신이 인정받은 일이자 자존감을 지켜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정서적 최적화’라 부릅니다. 노인은 새롭고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행동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자 하며, 이는 행동의 ‘고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다큐는 그 고집이 왜 존재하는지를 정서적으로 납득시켜 줍니다.


청력·관절·눈보다 더 깊은 문제: 고립되는 마음

초고령자가 겪는 주요 신체적 문제는 청력 저하, 퇴행성 관절염, 근력 소실입니다. 그러나 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단순한 의학 정보가 아닙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게 아니라, “이젠 내가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는 심리적 위축, “나는 쓸모 없다”는 자존감 저하, 이 모든 것이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의 80세 이상 노인 중 절반 이상이 외출을 자제하며, 이 중 다수가 사회적 고립 증후군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출처_EBS다큐


마지막까지 삶의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는 노인들

100세의 김기룡 할아버지는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갑니다. 세탁, 면도, 식사까지 느리지만 스스로 해냅니다. 자식들의 권유로 함께 살자는 말에도, “거긴 감옥 같아. 난 이 집이 좋아.”라며 자신의 공간에 머뭅니다.

비록 방은 정돈되지 않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손닿는 곳에 최적화한 효율적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지저분한 방은 그의 독립을 지키는 방식이며, 타인의 개입은 오히려 삶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고집, 그 이면의 진심

다큐에 등장하는 모든 노인들은 단 한 가지 공통점을 갖습니다. 바로 ‘나는 아직 사람이다’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려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방문을 열고, 누군가는 다림질을 하며, 또 다른 이는 밭을 지키고, 자전거를 타며, 자신을 지켜냅니다.

그 고집의 이면엔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고독한 이웃, 이해가 아닌 ‘존중’으로 다가가야

단지 초고령자의 어려운 삶을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 그 안에 어떤 감정이 흐르는지를 이해하게 합니다.

  • “노인들의 고집은 이유 없는 집착이 아니다.”
  • “그들은 단지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고 싶은 것이다.”

노인의 독립과 존재감을 존중하고, 그 삶의 방식이 불편하더라도 함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공존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엔 어떤 노인이 있나요? 그분의 삶을, 그분의 방식으로 존중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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