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500m, 종교와 생존이 교차하는 동굴에서부터, 야자수 잎 흔드는 설탕야자 꼭대기까지. 인도네시아의 숨겨진 일상 속 신과 인간의 공존을 따라가 본다.

마대비아사의 지하 동굴, 신념과 생존의 공간
1971년, 망치와 끌만으로 땅을 판 남자가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램봉안 섬의 한 지하 500미터 깊이 동굴. 이곳은 마대비아사라는 이름의 남성이 15년 동안 독력으로 조성한 지하 주택이다. 침실, 거실, 저장고, 심지어 명상실까지 갖춘 이 공간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당시 인도네시아 정치 격변기 속에서 신념과 생존을 함께 지키기 위한 삶의 요새였다.
1965년 수하르토의 군부 쿠데타 이후 벌어진 공산주의자 학살. 약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로 희생되던 시대, 마대비아사는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이 지하 공간을 파기 시작했다. 동물 배설물로 만든 흙을 벽으로 삼고, 손수 뚫은 창으로 빛을 끌어들인 그의 동굴은 예술이자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바다 위의 공장, 우무가사리 해초의 향기
이후 카메라는 인도네시아 바다로 향한다. 한때 조용한 어촌이던 램봉안 섬. 그곳 거리마다 퍼지는 바다 냄새의 정체는 바로 '우무가사리'라는 해초. 홍어 냄새를 닮은 이 해초는 현지 주민들이 직접 줄에 포자를 묻어 바닷속에서 키우고, 햇볕에 말려 프랑스 화장품 회사에 납품한다. 해초 양식은 단순 생계수단을 넘어, 램봉안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섬 경제의 근간이다.
고무 튜브를 활용해 해초를 수확하는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인상적이다. 이 산업은 여성과 노인을 포함한 지역 전 세대가 참여하며, 공동체적 노동의 미학을 보여준다.

화산의 분노와 전사 마을, 띵나의 삶
다음으로 소개되는 곳은 까랑아슴 지역의 띵나 마을. 최근 아궁산 화산 폭발로 대피령이 내려졌던 이 마을은, 사실 전사들의 후예가 살던 유서 깊은 곳이다. 마을 주민들의 건장한 체격과 강한 문화는 전사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흑돼지를 기르고, 바비굴링이라는 돼지고기 요리를 통해 공동체 잔치를 연다.
화산재가 내린 비옥한 땅 위, 향신료를 듬뿍 넣은 돼지고기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제의의 일환이다. 요리 전 신에게 술을 바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신과 인간의 경계가 일상 속에서 허물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신과 함께하는 발리의 종교 의례
발리 사람들에게 종교란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삶 그 자체다. 망자를 위한 제의 '뽀라 달럼'에서 소는 희생의 제물로 바쳐진다. 힌두교 신자들이 소고기를 금기시하는 것과는 다른, 발리만의 문화적 예외이다.
이날 의례에는 전 마을이 참여하고, 청년들이 소를 몰고, 노인이 성수를 뿌리고, 아이들이 기도를 올린다.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우며, 집집마다 사원이 존재하는 이곳에선 조상신과의 소통이 일상이다. 수만 개의 사원이 있는 발리는 '신의 섬'이라 불릴 만하다.

음식을 통한 감사, 그리고 인생의 여운
결국 발리의 모든 삶은 '감사'로 귀결된다. 먹는 행위조차 신에게 허락받은 일. 야자수에서 채취한 수액은 막걸리처럼 발효되어, 공동체 잔치에서 함께 나눠 마신다. 이 술과 함께 바삭한 바비굴링을 나누며, 사람들은 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 다큐가 보여주는 인도네시아는 관광지 너머의,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의 공동체다. 그들의 고된 노동, 정교한 신앙, 그리고 소박한 웃음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삶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당신도 이런 삶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나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지하의 동굴, 바다의 해초, 화산 옆 마을, 그리고 제물로 바쳐진 소 한 마리까지. 이 다큐는 그 자체로 종교적 수행, 정치적 투쟁, 공동체적 삶이 얽혀 있는 한 폭의 인간 서사시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다면, 이 다큐를 놓치지 마세요.
💬 당신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공감이 되셨다면 '좋아요'와 '공유', 그리고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또 아름답습니다.
'주제별 다큐멘터리 큐레이션 >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Carpe Diem! 리스본에서 아조레스까지, 포르투갈 진짜 색을 만나다 (3) | 2025.08.09 |
|---|---|
| 쓰촨에서 티베트까지, 5,476km 인생 로드트립! 318도로 절경과 사람들 (4) | 2025.08.08 |
| 로키산맥이 건넨 위로, 제스퍼부터 뱀프까지 걷는 치유의 트레일 (0) | 2025.07.11 |
| 테무진에서 칭기즈칸으로: 비천한 유목민이 초원 제국을 일군 7대 전략 (1) | 2025.07.09 |
| 150일, 6대륙·13만 km를 누비며 인류의 80대 문명 보물을 찾아서 (2) | 2025.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