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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세 번 머문 땅, 스리랑카 배삭데이 여행 — 등불과 꽃, 그리고 깨달음의 길

디-사커 2025. 5. 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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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국가로서의 위엄을 간직한 스리랑카는 해마다 음력 4월 보름, 일명 배삭데이(부처님 오신 날)에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 불자들이 찾는 순례지가 있으니, 바로 스리달라다 말리가, 일명 불치사다. 부처의 치아 사리가 모셔진 이 신성한 장소는 스리랑카 불교의 심장부로 불린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배경을 따라가며, 신앙과 역사,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지는 진귀한 장면들을 담아낸다. 여행자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8시간 반을 날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도착한 후, 차를 타고 불교의 중심지 캔디(Kandy)로 향한다.


캔디, 불교의 마지막 수도에서 불치사의 위엄을 마주하다

캔디는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다. 마치 한국의 경주처럼 고대 불교 유적이 풍성하게 남아 있는 도시다. 배삭데이 기간 동안 이 도시는 말 그대로 축제의 장으로 변모한다.

거리는 불교기를 상징하는 오색 깃발로 장식되고, 사원에서는 불자들의 참배와 기도, 공양이 이어진다. 스리달라다 말리가(불치사)는 세계 곳곳에서 불자들이 모여드는 성지이며, 이곳에선 누구든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체험할 수 있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의미처럼, 불치사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경건하면서도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부처의 삶을 기리고 실천하는 날로 여긴다.


구원의 상징, 부처의 치아사리와 캔디의 전설

불치사에 봉안된 부처의 치아사리는 오랜 전설을 품고 있다. 고대 인도 칼링가 왕국의 구왕이 꿈에서 부처를 보고, 평화를 위해 헤마말라 공주를 통해 사리를 스리랑카로 보냈다는 이야기다. 이후 스리랑카의 수도가 옮겨질 때마다 사리도 함께 이동했다.

이제 7년에 한 번만 일반 공개되는 이 성물은 직접 촬영조차 금지된 채,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참배만 허락된다. 사람들이 꽃을 봉헌하며 사리 앞에서 묵상하는 이유는 그 꽃처럼 모든 것이 언젠가 시들어간다는 무상함(아니차)을 되새기기 위함이다.


배삭데이의 절정, 에살라 페라헤라와 불참을 등에 실은 코끼리

배삭데이 기간 중에는 원래 음력 7월에 열리는 에살라 페라헤라(Eesala Perahera)를 대신해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이 전통 행사는 사리를 모셔오던 장면을 재현하는 것으로, 기수, 전통 춤꾼, 왕과 귀족 복장을 한 배우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참을 등에 실은 코끼리가 등장한다.

스리랑카에서 코끼리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사리를 실어나르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이 행진은 단지 축제가 아니라, 과거의 신성한 의식을 현대에 되살리는 재현의 장이다.


팔각등과 등불 축제, 스리랑카식 기도와 공동체 정신

배사쿠두(배 등불 축제)는 스리랑카 불교의 중요한 전통 중 하나다. 팔각등은 불교의 여덟 가지 바른 삶의 길(팔정도)를 상징하며, 이제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등불을 만든다.

각 가정과 사찰에서는 화려한 등불을 제작해 거리를 장식하고,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 축제로 발전했다. 이를 통해 스리랑카 사람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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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나루와와 시기리아에서 만난 불교의 흔적과 스리랑카의 자부심

고대 수도였던 폴로나루와(Polonnaruwa)에는 불교 문화의 정수가 녹아 있는 바타다 사원파라크라마 바후 왕궁, 거대한 와불상이 남아 있다. 모든 사원들은 네 방향의 불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현재는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인 시기리아(Sigiriya). '사자의 목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이 바위산 위에는 한때 왕궁이 있었고, 지금은 고대 왕 카사파일세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간직한 유적지로 남아 있다.


피두랑갈라에서 바라본 깨달음의 시야와 불교 유산의 가치

시기리아와 마주한 피두랑갈라(Pidurangala)는 명상과 깨달음을 추구하던 승려들의 수도원이었던 곳이다. 긴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벽돌로 만든 와불, 명상 공간, 그리고 360도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그 자체로 무상과 비움, 그리고 자연과의 일체를 말해준다. 현대인에게 진정한 깨달음은 복잡함이 아니라 단순함에서 비롯됨을 시사하는 장소다.


마을 체험과 코끼리 보호, 삶 속에서 이어지는 불교의 실천

전기가 닿지 않는 시골 마을 카양활라에서는 현지인들과 함께 키리바스(코코넛 밀크 밥)를 만들고, 불을 지피기 전 기도를 올리는 신성한 행위를 체험할 수 있다. 음식을 나누고, 농작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이 모든 과정은 불교의 자비와 공동체 정신에서 비롯된다.

한편, 국립공원에서는 멸종 위기의 코끼리를 보호하고 있다. 농작물 피해로 갈등을 겪던 과거를 넘어, 이제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 시스템이 형성되고 있다.


스리랑카 종교의 융합, 카타라가마 사원의 신성한 약속

마지막 여정은 스리랑카의 다종교 성지인 카타라가마 사원이다. 이곳에서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가 공존하며 하나의 신성한 공간을 공유한다. 사람들은 신에게 소원을 빌며 몸을 정갈히 하고, 소원이 이뤄지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과일을 바치며 감사를 표한다.

고통을 짊어지는 카바디 의식, 자신을 괴롭히는 행위를 통해 정화를 구하는 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신과 불, 그리고 삶과 대면하고 있다.


마무리: 불교 정신의 재발견, 삶 속의 깨달음

이번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삶 속에서 실천되는 불교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스리랑카의 사람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제의나 형식에만 국한하지 않고, 일상의 기쁨과 공동체의 나눔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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